티스토리 뷰

주변 친구가 은행 대출 한도가 모자라 전세 계약을 포기했다는 말을 들은 게 불과 몇 달 전입니다. 그런데 같은 시기, 일부 공공기관 임직원들은 정부 지침을 어겨가며 최대 2억 원이 넘는 돈을 무이자로 빌렸습니다. 52개 공공기관 중 22곳이 규정을 위반한 채 사내 주택자금대출을 운영해 온 사실이 국회 자료 분석으로 드러났습니다.

 

이중잣대, 그 시작은 규제의 온도 차이였습니다

저도 처음엔 "공공기관이 복지 차원에서 저리 대출 정도는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자료를 들여다보고 나서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정부는 '공공기관의 혁신에 관한 지침'을 통해 공공기관이 임직원에게 제공할 수 있는 주택자금대출 한도를 7,000만 원으로 못 박아 두고 있습니다. 금리 역시 한국은행이 공표하는 은행 가계자금대출 금리 이상으로 운영하도록 명시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 시중 은행보다 싸게 빌려주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달랐습니다. 국민연금공단, 한국국토정보공사, 한국노인인력개발원 등은 아예 무이자로 주택 자금을 빌려줬습니다.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와 국립공원공단은 연 2%, 한국조폐공사는 연 2.5%로 운영했습니다. 지침이 요구하는 최저 기준보다 훨씬 낮은 수준입니다.

제가 곁에서 지켜본 청년들은 DSR 규제에 막혀 대출 한도가 줄어드는 걸 월급명세서 보듯 실감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이란, 연간 소득 대비 모든 대출의 원금과 이자 상환액 비율을 뜻합니다. 쉽게 말해 "네 월급으로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빌려라"는 상한선인데, 이 기준이 강화될수록 대출 가능 금액은 줄어듭니다. 일반 국민에게는 이 기준이 촘촘하게 적용되고 있었습니다.

  • 지침 기준: 주택자금대출 한도 7,000만 원, 금리는 한국은행 가계자금대출 금리 이상
  • 위반 기관 수: 52개 운영 기관 중 22곳(42.3%)
  • 위반 기관 총 지원 규모: 1,034명, 671억 원
  • 무이자 운영 기관: 국민연금공단, 한국국토정보공사, 한국노인인력개발원 등
요약: 정부 지침은 한도 7,000만 원·시중금리 이상을 요구하지만, 22개 공공기관은 이를 어기며 무이자~2%대 저리로 수백억 원을 임직원에게 지원했습니다.

 

지침위반의 민낯, 숫자가 말해줍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주택 관련 업무를 직접 담당하는 기관들이 오히려 규정을 더 크게 벗어나 있었거든요.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주택구입자금 최대 2억 원, 임차자금 최대 1억 5,000만 원을 연 2.5% 금리로 지원했습니다. 지침 한도인 7,000만 원의 두 배를 훌쩍 넘는 수준입니다(출처: 헤럴드경제). 한국부동산원도 최대 1억 4,000만 원까지 대출해 줬으니, 이 역시 기준의 두 배입니다.

신용보증기금은 자녀 수 등 우대조건을 얹어 최대 2억 1,080만 원까지 가능하도록 설계했습니다. 지난해 신용보증기금의 1인당 평균 대출액은 약 1억 6,000만 원이었는데, 이는 정부 기준의 두 배를 넘는 수치입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구조에 있습니다. 사내 주택자금대출은 시중 은행 대출과 달리 DSR 규제의 직접 적용 대상이 아닙니다. 이 말은 곧, 임직원이 사내대출로 주택 자금을 먼저 마련한 뒤 별도로 은행 대출까지 받을 여지가 생긴다는 의미입니다. 가계부채를 줄이겠다는 정책 방향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구조입니다.

가계부채란 가구가 금융기관에서 빌린 돈의 총합을 뜻하는데, 정부는 이 규모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과도하게 높다고 판단해 수년째 관리를 강화해 왔습니다. 그런데 DSR 사각지대에 놓인 사내대출이 이 관리망의 구멍 역할을 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한국은행이 매년 발표하는 금융안정보고서에서도 가계부채의 구조적 위험성을 반복해서 경고하고 있는 만큼(출처: 한국은행), 이 사각지대는 단순한 행정 착오로 넘길 수 없습니다.

요약: 주택 관련 공공기관들이 오히려 지침을 크게 초과했고, 사내대출이 DSR 규제 밖에 놓여 있어 정부의 가계부채 관리 정책에 구조적 허점을 만들고 있습니다.

 

DSR 사각지대, 이대로 둬서는 안 됩니다

제 경험상 이런 종류의 문제는 "몰랐다"로 덮기 어렵습니다. 지침이 명확히 존재하고, 기관들도 그 내용을 알고 있었을 텐데 지켜지지 않았다는 건 의지의 문제이기도 하거든요.

이번에 드러난 구조적 모순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한도와 금리 기준을 버젓이 어긴 운영 실태이고, 다른 하나는 DSR 사각지대를 활용한 추가 대출 가능성입니다. 두 가지가 결합되면, 공공기관 임직원은 시중 은행 고객에 비해 훨씬 유리한 조건으로 더 많은 대출을 더 싼 이자로 받을 수 있는 구조가 됩니다.

일반적으로 사내복지 차원의 저리 대출은 어느 기업에나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여기서 핵심이 "공공기관"이라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공공기관은 국민 세금과 준조세 성격의 자금으로 운영되며, 바로 그 국민들이 더 엄격한 대출 규제를 적용받고 있습니다. 공공기관 혁신 지침이 존재하는 이유 자체가 이 불균형을 막으려는 것인데, 지침이 지켜지지 않으니 제도의 존재 의미가 흐려집니다.

앞으로 필요한 조치는 분명합니다. 지침을 위반한 기관에 대한 즉각적인 시정조치와 함께, 사내 주택자금대출을 DSR 산정에 포함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손봐야 합니다. 그래야 일반 국민과 공공기관 임직원이 같은 출발선에 서게 됩니다. 공정한 규칙이란 적용받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면 안 된다는 것, 그게 이번 사안이 던지는 가장 단순하고 무거운 질문입니다.

요약: 사내대출의 DSR 사각지대 문제를 해소하고, 지침 위반 기관에 즉각 시정조치를 내려야 공공기관과 일반 국민 사이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공공기관 사내 주택자금대출, 원래 얼마까지 가능한 건가요?

A. '공공기관의 혁신에 관한 지침'에 따르면 주택구입·임차자금 대출 한도는 7,000만 원이고, 금리는 한국은행이 공표하는 은행 가계자금대출 금리 이상으로 적용해야 합니다. 이번에 문제가 된 기관들은 이 두 기준을 모두 또는 일부 위반한 상태로 운영해 왔습니다.

 

Q. 사내대출은 왜 DSR 규제 적용을 안 받나요?

A. DSR은 금융기관이 대출을 심사할 때 적용하는 기준이라, 금융기관이 아닌 사용자(고용주)가 직접 빌려주는 사내대출에는 원칙적으로 적용되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임직원이 사내대출을 먼저 받은 후 은행 대출을 별도로 신청할 때 DSR 산정에서 사내대출이 빠질 수 있어, 사실상 더 많은 금액을 빌릴 수 있는 경로가 열리는 구조입니다.

 

Q. 이번에 지침을 위반한 기관들은 어떤 제재를 받나요?

A. 현재까지 공개된 내용 기준으로는 송언석 의원이 즉각적인 시정조치와 제도 전반 재정비를 촉구하는 단계입니다. 구체적인 제재 수위나 환수 여부는 정부의 후속 방침에 달려 있으며, 아직 확정된 내용은 없는 상황으로 보입니다.

 

Q. 신용보증기금이 최대 2억 1,080만 원까지 빌려줄 수 있었던 이유는 뭔가요?

A. 자녀 수 등 우대조건을 내부적으로 설계해 기본 한도 위에 추가 한도를 쌓는 방식으로 운영했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지난해 1인당 평균 대출액이 약 1억 6,000만 원에 달했는데, 이는 정부 기준 7,000만 원의 두 배를 훌쩍 넘는 수치입니다.

 

결론

청년이 전세 대출 한도가 부족해 계약을 포기하고, 서민이 DSR 벽에 막혀 내 집 마련을 미루는 동안 공공기관 임직원 1,034명은 정부 지침을 넘어선 거액을 무이자 혹은 2%대 이자로 빌렸습니다. 이건 복지의 문제가 아니라 공정의 문제입니다.

제가 이 사안을 접하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허탈함이었습니다. 규제를 만드는 쪽과 그 규제를 피해 가는 쪽이 같은 공공의 이름을 달고 있다는 사실이요. 정부가 이번 사안을 흐지부지 넘기지 않으려면, 지침 위반 기관에 대한 시정조치와 함께 사내대출을 DSR 산정 체계에 편입하는 구조적 개선까지 이어져야 합니다. 두루뭉술한 재정비 선언이 아니라, 숫자로 확인할 수 있는 변화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참고: https://biz.heraldcorp.com/article/108157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