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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 "결혼은 아직 모르겠고, 친한 친구랑 같이 살면 안 되나?"라고 말하는 사람이 부쩍 늘었습니다. 저도 솔직히 그 마음이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막상 함께 살기를 택한 사람들이 전세 보증금을 공동으로 냈다가 법적 보호를 전혀 받지 못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이건 개인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친족가구가 8년 새 2.5배로 늘어난 지금, 정책은 여전히 혈연과 혼인 중심에 머물러 있습니다.

 

주거 정책이 외면한 54만 가구의 현실

2023년 기준 비친족가구는 54만5000가구에 달합니다. 여기서 비친족가구란, 법적 혼인이나 혈연 관계 없이 연인·친구·직장 동료 등과 함께 사는 가구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가족이 아닌 사람과 같은 집에 사는 경우입니다. 2015년 대비 2.5배 증가한 수치로, 이는 국토연구원이 발표한 '비친족가구의 증가에 따른 주거정책 개선방향' 보고서(출처: 국토연구원)에서 확인된 공식 통계입니다.

문제는 숫자가 아니라 제도입니다. 현행 주거 지원 체계는 공공임대주택, 주택담보대출, 주거급여, 주택청약 모두 '법적 가족' 또는 '1인가구'를 기준으로 설계되어 있어 비친족가구는 사실상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습니다. 저도 처음엔 그냥 법 조항의 빈틈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실제 사례를 찾아볼수록 이건 빈틈이 아니라 구조적 배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임차권 승계 문제는 심각합니다. 임차권 승계란 주계약자가 사망했을 때 함께 살던 사람이 그 임대차 계약을 이어받을 수 있는 권리입니다. 법적 가족이라면 당연히 인정되는 이 권리가 비친족가구에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오래 같이 살아온 사이라도, 함께 보증금을 마련했어도 법 앞에서는 남남입니다.

보증금 상황은 더 구체적입니다. 비친족가구의 44.1%가 계약서에 이름이 올라가지 않은 상태에서 보증금을 공동 부담하고 있고, 그 금액은 평균 7600만 원, 전체 보증금의 40.1%에 해당합니다(출처: 헤럴드경제). 수천만 원을 냈는데 계약서에 내 이름이 없다면, 분쟁이 생겼을 때 돌려받을 근거조차 없는 겁니다.

  • 공공임대주택 신청 자격: 법적 가족 또는 1인가구만 해당, 비친족가구 배제
  • 주거급여: 법적 가구원 기준 적용, 비친족 동거인은 수급 대상 외
  • 임차권 승계: 법적 상속인에 한정, 비친족 동거인은 계약 승계 불가
  • 보증금 권리 보호: 계약서 미등재 공동 부담자는 법적 보호 사각지대
요약: 54만5000 비친족가구가 보증금·임차권·공공임대 등 핵심 주거 지원에서 모두 배제된 것은 제도적 설계 실패입니다.

 

거주 단위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 설득력 있을까

국토연구원 윤성진 부연구위원 연구팀은 '가족 단위 주거정책'을 '거주 단위 주거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제언합니다. 여기서 거주 단위란 법적 관계와 무관하게 실제로 같은 공간에서 생활을 공유하는 사람들을 하나의 단위로 인정하는 개념입니다. 혈연이나 혼인증명서가 아니라, '같이 살고 있는가'를 기준으로 삼자는 이야기입니다.

이 제안을 처음 접했을 때 저는 '그래, 맞는 말이지'라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 기준이 모호해지면 제도가 남용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그런 우려를 제기하는 시각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는, 이미 절반 가까운 비친족가구가 수천만 원씩 공동 부담을 하며 살고 있는 현실에서 '남용'을 걱정하는 건 순서가 바뀐 이야기입니다. 제도가 현실을 못 따라가고 있는 게 먼저입니다.

또 다른 논점은 '함께 살기'의 복지 기능입니다. 1인가구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혼자 사는 노인의 고독사, 위기 대응 취약성이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 맥락에서 비친족가구는 단순히 주거비를 나누는 관계가 아니라, 아플 때 곁에 있어주고 위기 시에 도움을 주는 상호돌봄 공동체로서의 기능을 합니다. 상호돌봄이란 혈연이나 계약 없이 서로를 챙기며 일상의 취약성을 보완하는 관계를 말합니다.

저도 주변에서 이혼 후 친구와 함께 살면서 심리적 안정과 생활비 절감을 동시에 얻은 사례를 봤습니다. 결혼이라는 선택지를 택하기 어려운 현실적 이유, 즉 부채나 재산 문제, 양육 부담이 있는 사람들이 택하는 '비혼 공동 거주'가 늘어나는 건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이런 관계에 제도적 보호가 전혀 없다는 건, 개인의 생애경로가 다양해진 현실을 정책이 외면하는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요약: '거주 단위' 중심의 패러다임 전환은 단순한 제도 수정이 아니라 다양한 삶의 방식을 인정하는 사회적 선택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친구랑 같이 살면 전세 계약서에 두 명 이름을 올릴 수 있나요?

A. 현행법상 임대차 계약서에 공동 임차인으로 두 명의 이름을 올리는 것 자체는 임대인이 동의하면 가능합니다. 다만 이 경우에도 주거급여나 공공임대 신청 등 공적 주거 지원은 여전히 법적 가족 기준을 따르기 때문에 비친족가구는 혜택을 받기 어렵습니다. 계약서에 이름을 올리는 것과 제도적 보호를 받는 건 별개의 문제라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합니다.

 

Q. 비친족가구도 주택청약을 넣을 수 있나요?

A. 현행 주택청약 제도는 법적 가족 단위 또는 1인가구를 기준으로 운영됩니다. 비친족가구는 원칙적으로 공공분양·공공임대 청약에서 '가구'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개인 자격으로 1인 청약은 가능하지만, 비친족 동거인과 함께 거주하는 상황은 정책 설계에 반영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부분이 연구진이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하는 핵심 이유 중 하나입니다.

 

Q. 보증금을 같이 냈는데 주계약자가 아니면 돌려받기 어렵다고 하던데 사실인가요?

A. 안타깝게도 현실이 그렇습니다. 계약서에 이름이 없는 상태에서 보증금을 분담했다면, 임대차보호법상 법적 보호를 주장할 근거가 없어 분쟁 시 돌려받기 매우 어렵습니다. 국토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비친족가구의 44.1%가 이런 상황에 해당하며 평균 금액은 7600만 원입니다. 공동 부담 내역을 증빙할 계좌 이체 기록 등을 남겨두는 것이 최소한의 자구책이지만, 근본적인 해결은 제도 개선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Q. 외국에는 비친족가구를 보호하는 제도가 있나요?

A. 프랑스의 시민연대협약(PACS)이나 북유럽 일부 국가의 동거 등록제처럼, 혼인 외 동거 관계에 법적 보호를 부여하는 제도를 운영하는 나라들이 있습니다. 이를 비친족 동거 제도화라고 볼 수 있는데, 반드시 외국 제도를 그대로 이식할 필요는 없다는 시각도 있지만, 적어도 보증금 권리 보호와 임차권 승계 측면만큼은 참고할 만한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결론

제 경험상 이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해결될 성격이 아닙니다. 비친족가구는 이미 54만 가구를 넘었고, 이들이 공공임대, 주택청약, 보증금 보호 어디에서도 법적 주거 단위로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은 제도가 얼마나 경직되어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거주 단위' 중심으로의 전환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제도 변화에는 시간이 걸리고, 세부 기준을 어떻게 정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최소한 보증금을 함께 낸 사람이 계약서에 이름도 올리지 못한 채 수천만 원을 날릴 위험에 노출되는 상황만큼은 빠르게 손봐야 한다고 봅니다. 함께 사는 방식이 이렇게 다양해진 시대에, 정책이 혈연과 혼인증명서만 들여다보는 건 더 이상 맞지 않습니다.

참고: https://biz.heraldcorp.com/article/10433833